맨 마지막 한줄 제하고 그대로 퍼왔습니다.
이런저런 잡심이 들때 읽으려 가져왔습니다. :)
미안하다.
돈 없어서 미안하다. 부모님도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하다. 종부세나 소득세는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가난해서 미안하다.
군대갔다와서 미안하다. 뇌물바칠 돈도 없고 다치지도 않아서 미안하다. 남들 돈벌고 연애하는 동안 나라를 위해 일해서 미안하다.
가방끈 짧아서 미안하다. 아무리 자신을 갈고 닦아봤자 서류전형에서 떨어져서 미안하다.
못생겨서 미안하다. 키도 작아서 미안하다. 185cm에 근육질에 꽃미남이 아니라 미안하다.
유명 스포츠 헬스클럽 안 다녀서 미안하다. 일하느라 운동할 시간도 없어서 미안하다. 그냥 동네에서 뜀박질해서 미안하다.
중소기업 취직해서 미안하다. 내 직장이 금융회사도 아니고 로펌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니라 미안하다.
정치에 신경써서 미안하다. 사회정의에도 신경써서 미안하다. 돈도 안 되는 문제에 신경써서 미안하다.
와인도 외제차도 스위스 시계도 몰라서 미안하다. 다들 GQ나 에스콰이어 보고 사는데, 난 벼룩시장 보고 살아서 미안하다.
땅값 싼 곳에 살아서 미안하다. 내가 사는 곳이 강남은 아니고, 타워팰리스는 더더욱 아니라 미안하다.
영어 못해서 미안하다. 아무리 굴려도 '어뢴지'가 나오지 않는구나.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영어 못해서 미안하다.
유학 안 갔다와서 미안하다. 고액과외도 못받아서 미안하다. '그냥 학교 다녀서' 미안하다.
재테크 안해서 미안하다. 펀드도 MMF도 CMA도 부동산도 종자돈이 없어서 미안하다. 월급만 받고 있어서 미안하다.
법을 지켜서 미안하다. 손해보면서 법 지켜서 정말 미안하다. 남들은 요리조리 잘 빠지면서 득보지만 난 변호사도 없다. 미안하다.
봉사해서 미안하다. 기부해서 미안하다. 그 시간에 한푼 더 못 벌어서 미안하다. 없는 사람끼리 돕고 살아서 미안하다.
빽이 없어서 미안하다. 아는 경찰도, 아는 변호사도, 아는 펀드매니저도, 아는 정치인도 없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 해서 미안하다.
클래식, 강남 클럽, 재즈는 관심 밖이라 미안하다. 스타를 제일 좋아해서 미안하다. 사회가 무시하는 '그딴 놀이' 좋아해서 미안하다.
세금내서 미안하다. 세무사 고용할 돈도, 탈세할 뺵도 없어서 미안하다. 버는 대로 신고해서 미안하다.
구두쇠라 미안하다. 카드로 거침없이 못 긁어서 미안하다. 석유값, 지하철 요금, 라면값에 벌벌 떨어서 미안하다.
착하게 살아서 미안하다. 원칙대로 살아서 미안하다. '끌어주고 밀며' '좋은게 좋게' 살지 않아서 미안하다.
네게 정치 얘기를 해서 미안하다. 돈되는 얘기를 안 해줘서 미안하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미안하다.
못나서 미안하다.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시궁창에 처박하는 한국 사회에서, 못나고 약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떳떳해서 미안하다. '감히' 부자와 강자에게 맞먹어서 미안하다.
난 약하지만, 희망도 자존심도 잃지 않는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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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으로 살기에, 정말 미안합니다.
치솟는 물가, 대책조차 안 보이는 내집마련, 북극과 남극보다도 멀어져버린 양극화, 아마도 민영화될 의료보험,
소시민에게 점점 가혹해지는 한국 사회......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것이 정말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노력하고 참고 견디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도 그것을 응원했지요.
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는 소시민에게 너무 가혹하군요.
"네가 약하고 못난거니 그냥 죽어라~" 라는 분위기랄까요.
그나마 벗어나보려고 하면, "잘난 우리는 하나도 도와줄 수 없다. 너희가 알아서 발버둥쳐라. 실패하면 그게 네 팔자지~"라고 비웃는 듯 하고요.
이 양극화는 경제뿐만이 아닌 문화 측면으로까지 뻗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문화, 그들의 음식, 그들의 놀이가 따로 생겨난 것 같아요. 만화를 보고 킬킬거리는 것은 '덕후'가 되었고, 영화를 보고 킬킬거리는 것은 '문화인'이 되었습니다. 데이트에서는 전국 최고의 칼국수보다 동네 4위의 파스타가 더 매력적이고요. 사회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문학, 노래가사, 그림은 어느새 구닥다리가 되었지만, 얼굴 반반한 청년이 '사랑해~ 워우워우우어어어~' 하고 소를 몰면 쿨한 겁니다. 물론 사람의 선호는 개인적이고, 참견할 권리도 없죠. 문제는, 이제 만화보고 칼국수 먹고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너와 나는 노는 물이 다르다고.
정부도 사회도 언론도 문화도 손을 놓았고, 이제 소시민들은 찬 바람속에 내팽개쳐졌습니다.
그래도 전 귀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평등합니다. 나라의 주권자이며, 우열은 없습니다.
돈도 적고 브랜드 제품도 적지만, 제 목소리를 낼 수는 있습니다.
소시민을 바보취급하는건 세상의 자유입니다. 미안합니다. 그 비웃음을 업어치는 것 역시 제 자유입니다.
신경쓰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은 어떻고, 어떤 점이 제대로 되었고 어떤 점이 못났는지.
그것조차 모른다면 전 세상이 휘두르는대로 이리 펄럭 저러 펄럭 휘둘리다가 시궁창에 처박히겠지요. 돈도 없고 변호사도 없으니.
하지만 신경씁니다. 어떤 변화에 화를 내야할지, 어떤 소식에 기뻐해야할지 신경써야 합니다.
전 오늘도 월급을 받으려 일합니다. 포스코 주식도 금 펀드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일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만화책 빌리고 조그만 방에서 라면에 김치 먹고 쉬겠습니다 (김치는 뭐 이리 비싼지). 수준 떨어져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도 전 대한민국의 주권자, 국민입니다.
미안합니다. 노력하면 '감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와인 안 마시고 외제차 안 몰고 조기유학 안 갔다왔어도
내 사랑에게 강남 오피스텔과 디자이너 브랜드를 주지 못해도
노력하면 '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미안합니다.